신탁사 책임준공 '부메랑'…"100억 보증섰다가 500억 물어줄 판"

입력 2024-03-21 18:17   수정 2024-03-29 19:09


중소 건설사를 대신해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은 부동산신탁사들이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하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효자상품’으로 주목받은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이 건설사 부실로 인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건설 경기 침체와 공사비 상승 여파로 책임준공형 신탁으로 추진된 다수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이 부실 위험에 처하면서 위기 전이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건설사 부실, 신탁사로 전이
21일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신한자산신탁은 첫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인천 원창동 물류센터 외에도 인천·경기 지역의 10여 개 공사 현장에서 책임준공 의무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말만 해도 신한자산신탁에 책임준공 의무가 전가된 사업장이 두 곳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수도권에만 10여 곳에 달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 사업장의 PF 대출 규모만 7000억~8000억원”이라며 “각 대주단이 신탁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최근 시공 능력 중위권 건설사들의 기업회생절차 신청이 잇따르고 있어 하반기 신탁사 대상 소송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이달 들어서만 시공 능력 105위 새천년종합건설, 122위 선원건설 등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새천년종합건설이 시공 중이던 경기 평택 물류센터 공사가 중단돼 대주단이 KB부동산신탁에 책임준공 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전국적으로 신탁사가 책임준공을 보증한 사업장은 1000곳 안팎이다. 금융감독원이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이 180개로 가장 많고 신한자산신탁(167개), 무궁화신탁(139개), 하나자산신탁(119개), 코리아신탁(117개), 우리자산신탁(108개) 등이 뒤를 이었다. 국내 신탁사들의 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 수탁액은 2020년 말 8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9월 말 17조1000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올해 만기 도래 사업장 급증
2015년 도입된 책임준공형 신탁 사업은 신용도가 낮은 지역 중소 건설사를 대신해 신탁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함으로써 PF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부동산개발시장 성장에 기여해왔다. 주로 물류센터, 오피스텔 등 비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공사 중단 사례가 드물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책임준공형 신탁으로 추진된 다수의 PF 사업이 부실 위험에 직면했다. 특히 코로나 발생 기간 공급과잉까지 겹친 물류센터 사업장은 신탁사의 책임준공 의무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건비 증가로 공사비가 크게 불어나 중소 건설사의 도산이 잇따르고 있는 점도 신탁사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54.6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1월 118.30과 비교하면 30.7% 상승한 수치다.

최근 2~3년 사이 책임준공형 사업장이 급증한 만큼 올해부터 대거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 건설사 도산→신탁사 책임준공 불이행→손해배상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사업장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로펌 변호사는 “당초 100억원 수준이던 공사비가 공사 지연,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 증가, 고금리 등으로 400억~500억원인 PF 대출 규모까지 불어나면서 책임준공 확약에 따른 손해배상액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며 “신탁사 위기로 PF 자금을 댄 금융권, 수분양자, 나아가 다른 사업장에까지 부실이 전이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허란/김진성/민경진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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